루크 스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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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루크 스캇은 델랜드 고등학교와 오클라호마 주립 대학교를 거쳐 2001년 클리블랜드 인디언스에 지명된 야구 선수이다. 2005년 휴스턴 애스트로스에서 메이저 리그에 데뷔하여, 볼티모어 오리올스를 거쳐 2011년 탬파베이 레이스에서 활동했다. 2013년에는 SK 와이번스에서 뛰었으나, 이만수 감독과의 불화로 퇴출되었다. 통산 135홈런을 기록했으며, 2010년에는 버락 오바마 대통령의 출생 관련 음모론에 대한 발언으로 논란이 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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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크 스캇 - [인물]에 관한 문서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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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 정보 | |
이름 | 루크 스콧 |
영어 이름 | Luke Scott |
출생일 | 1978년 6월 25일 |
출생지 | 플로리다주 드레온스프링스 |
신장 | 183cm |
체중 | 100kg |
포지션 | 외야수 / 지명타자 |
투구/타석 | 우투/좌타 |
선수 경력 | |
드래프트 | 2001년 MLB 드래프트 9라운드, 클리블랜드 인디언스 지명 |
소속팀 | 휴스턴 애스트로스 (2005년~2007년) 볼티모어 오리올스 (2008년~2011년) 탬파베이 레이스 (2012년~2013년) SK 와이번스 (2014년) 페리코스 데 푸에블라 (2015년) |
MLB 경력 | |
데뷔 | 2005년 4월 5일,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 |
마지막 경기 | 2013년 9월 27일 |
MLB 통산 타율 | .258 |
MLB 통산 홈런 | 135개 |
MLB 통산 타점 | 436점 |
KBO 경력 | |
데뷔 | 2014년 3월 29일, 넥센 히어로즈 |
마지막 경기 | 2014년 7월 4일, 롯데 자이언츠 |
KBO 통산 타율 | .267 |
KBO 통산 홈런 | 6개 |
KBO 통산 타점 | 17점 |
사진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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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선수 경력
루크 스캇은 오클라호마 주립 대학교 졸업 후 2001년 드래프트 9라운드에서 클리블랜드 인디언스에 지명되며 프로 생활을 시작했다.[5] 토미 존 수술 재활 후 마이너 리그에서 활동하다 2004년 휴스턴 애스트로스로 트레이드되었고,[7] 2005년 메이저 리그에 데뷔했다.[9] 휴스턴 시절에는 구단 역사상 최초로 사이클 히트를 달성한 신인 선수가 되기도 했다.[11]
2007년 시즌 종료 후 볼티모어 오리올스로 이적하여[13] 주전 선수로 자리 잡았으며, 특히 2010년에는 27개의 홈런을 치며 개인 최고의 시즌을 보냈다.[7][17] 이후 탬파베이 레이스에서 두 시즌을 보낸 뒤, 2014년에는 KBO 리그의 SK 와이번스와 계약하며 한국 무대를 밟았다.[26] 그러나 잦은 부상과 당시 감독이었던 이만수와의 공개적인 마찰로 인해 논란을 빚었고, 결국 시즌 중 팀에서 방출되었다.[27] 2015년 토론토 블루제이스 산하 마이너 리그 팀에서 짧게 활동한 것을 마지막으로 프로 선수 경력을 마무리했다.[30][36]
2. 1. 유년 시절 및 아마추어 경력
스캇은 플로리다 델랜드에 있는 델랜드 고등학교에 다녔으며, 3학년 때 .460, 4학년 때 .420의 타율을 기록했고, IB 프로그램에 참여했다. 그는 1997년에 졸업했다.[1] 이후 오클라호마 주립 대학교에 진학하여 오클라호마 주립 카우보이스 야구 팀에서 뛰었고, 올-빅 12 컨퍼런스 선수로 선정되었다. 2000년 메이저 리그 베이스볼 드래프트에서는 45라운드(전체 1,327위)로 탬파베이 데블 레이스에 지명되었지만, 계약하지 않았다.[2] 2000년 여름에는 케이프 코드 야구 리그의 팔머스 코모도어스에서 뛰었고,[3][4] 밸리 야구 리그의 스톤튼 브레이브스에서도 활동했다. 또한 인디언 리버 커뮤니티 칼리지에서도 야구를 했다.[1] 스캇은 베네수엘라 리그에서 겨울을 보내며 el monstruo de cuadrangular|엘 몬스트루오 데 콰드랑굴라르spa("홈런 몬스터")라는 별명을 얻기도 했다.2. 2. 프로 경력
루크 스캇은 오클라호마 주립 대학교 졸업 후 2001년 드래프트 9라운드에서 클리블랜드 인디언스에 지명되며 프로 생활을 시작했다.[5] 토미 존 수술 재활 후 마이너 리그에서 활동하다 2004년 휴스턴 애스트로스로 트레이드되었고,[7] 2005년 메이저 리그에 데뷔했다.[9] 휴스턴 시절에는 구단 역사상 최초로 사이클 히트를 달성한 신인 선수가 되기도 했다.[11]2007년 시즌 종료 후 볼티모어 오리올스로 이적하여[13] 주전 선수로 자리 잡았으며, 특히 2010년에는 27개의 홈런을 치며 개인 최고의 시즌을 보냈다.[7][17] 이후 탬파베이 레이스에서 두 시즌을 보낸 뒤, 2014년에는 KBO 리그의 SK 와이번스와 계약하며 한국 무대를 밟았다.[26] 그러나 잦은 부상과 당시 감독이었던 이만수와의 공개적인 마찰로 인해 논란을 빚었고, 결국 시즌 중 팀에서 방출되었다.[27] 2015년 토론토 블루제이스 산하 마이너 리그 팀에서 짧게 활동한 것을 마지막으로 프로 선수 경력을 마무리했다.[30][36]
2. 2. 1. 클리블랜드 인디언스 시절
오클라호마 주립 대학교를 졸업하고, 2001년 메이저 리그 베이스볼 드래프트에서 클리블랜드 인디언스에 9라운드(전체 277순위)로 지명되어 프로에 입문했다.[5] 하지만 2001년 첫 프로 시즌은 팔꿈치 토미 존 수술을 받고 재활로 보냈다.[6] 2002년 사우스 애틀랜틱 리그의 컬럼버스 레드 스틱스에서 프로 데뷔를 했으며,[7][8] 2003년까지 킨스턴과 애크런 등 인디언스 산하 마이너 리그 팀에서 활동했다.[8] 마이너 리그 시절에는 베네수엘라 리그에서도 뛴 경험이 있다.2. 2. 2. 휴스턴 애스트로스 시절
스캇은 2004년 3월 31일 제롬 로버트슨과의 트레이드를 통해 휴스턴 애스트로스로 이적했다.[7] 2005년 4월 5일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를 상대로 메이저 리그 데뷔전을 치렀으나, 그 경기에서는 3타수 무안타를 기록했다.[9] 그의 첫 안타는 같은 해 4월 8일 신시내티 레즈의 투수 라몬 오르티스를 상대로 기록한 중견수 방면 3루타였다.[10] 2005 시즌 동안 스캇은 34경기에 출전하여 타율 0.188, 4타점을 기록하는 데 그쳤다.[7]2006년 7월 28일, 스캇은 애스트로스 구단 역사상 최초로 사이클 히트를 달성한 신인 선수가 되었다. 특히 홈런, 3루타, 2루타, 1루타 순서로 기록하는 보기 드문 "역순 사이클"(reverse cycle영어)을 완성했다.[11] 또한 이 경기에서 상대 투수 엔리케 곤잘레스를 상대로 자신의 메이저 리그 첫 홈런을 기록하기도 했다.[12] 2006년 시즌 후반부터 2007년 시즌까지 우익수 주전 선수로 자리 잡았다. 2007 시즌이 끝난 후에는 베네수엘라로 건너가 윈터 리그에서 뛰었고, 윈터 리그 올스타에 선정되기도 했다.
2. 2. 3. 볼티모어 오리올스 시절

스캇은 2007년 12월 12일, 미겔 테하다와의 트레이드를 통해 매트 알버스, 트로이 패튼, 데니스 사르페이트, 마이크 코스탄조와 함께 볼티모어 오리올스로 이적했다.[13]
이적 첫 해인 2008년에는 주전 선수로 활약하며 개인 통산 최다인 148경기에 출전하여 타율 0.257, 23홈런, 65타점을 기록했다.[7] 같은 해 5월에는 뉴욕 양키스 투수 라트로이 호킨스가 스캇의 머리 근처로 빠른 공을 던진 후 벤치 클리어링 상황에 연루되기도 했다. 당시 주심 척 메리웨더는 호킨스를 퇴장시켰고, 스캇이 투수에게 맞서는 것을 제지했다.[14] 이 사건으로 호킨스는 3경기 출장 정지 징계를 받았다.[15]
2009년 7월 7일, 시애틀 매리너스를 상대로 한 경기에서는 4타수 3안타(1루타, 3루타, 홈런 포함)를 기록하며 개인 한 경기 최다인 7타점을 올렸다.[16] 같은 해 8월 오브리 허프가 디트로이트 타이거스로 트레이드된 후, 오리올스는 스캇을 가끔 1루수로 기용하기 시작했다.
2010년은 스캇에게 최고의 시즌이었다. 타율 0.284, 27홈런, 72타점, OPS 0.903을 기록하며 32세의 나이에 개인 최고 성적을 경신했고, 팀의 주포로 활약했다.[7][17] 이 활약으로 2010 시즌 최우수 오리올스 선수로 선정되기도 했다.[17] 그러나 시즌 종료 후인 12월, 당시 미국 대통령이었던 버락 오바마가 미국에서 태어나지 않았다고 확신한다는 발언을 하여 큰 논란을 일으켰다.[33][34] 이에 오리올스 구단은 즉각 "스캇의 발언은 구단과 전혀 관계없는 개인의 의견"이라는 입장을 발표하며 선을 그었다.[35]
2011년에는 64경기에 출전하는 데 그쳤고, 타율 0.220, 9홈런, 22타점, 209타수 54삼진이라는 부진한 성적을 기록했다.[7][18] 결국 오리올스는 2012 시즌을 앞두고 스캇에게 재계약을 제시하지 않았고, 그는 FA 신분이 되었다.[19]
2. 2. 4. 탬파베이 레이스 시절
2011년 12월 11일, FA 신분이었던 스캇은 탬파베이 레이스와 1년 총액 500만달러에 계약을 맺었다.[20] 2012년 시즌 종료 후인 10월 31일, 레이스가 선수 옵션을 거절하면서 스캇은 다시 자유 계약 선수가 되었다. 이후 2013년 2월 6일에 레이스와 1년 275만달러 조건으로 재계약했다.[21]그러나 2013년 시즌은 부상으로 순탄치 않았다. 3월 31일, 시즌 개막 직전 종아리 부상으로 15일짜리 부상자 명단에 올랐다.[22] 4월 30일에 부상자 명단에서 복귀했으며, 스캇의 공백 동안 지명 타자 역할을 주로 맡았던 셸리 던컨이 로스터 조정을 위해 지명 할당되었다.[23] 7월에는 20경기에 출전하여 타율 0.284, 4홈런, 11타점을 기록하며 좋은 모습을 보이기도 했으나,[25] 8월 17일에는 허리 경련으로 다시 부상자 명단에 오르는 등 부상이 잦았다.[24] 9월 1일 복귀한 후에는 주로 벤치에서 경기에 나섰다. 2013 시즌 최종 성적은 91경기 출전(팀 내 최다인 61번의 지명 타자 선발 출장 포함)하여 타율 0.241, 9홈런, 40타점을 기록했다.[7] 시즌 종료 후인 10월 31일, 스캇은 다시 자유 계약 선수가 되었다.
2. 2. 5. SK 와이번스 시절
2013년 12월 19일, KBO 리그의 SK 와이번스와 1년 30만달러 (계약금 5만달러, 연봉 25만달러)에 계약하며 한국 무대에 진출했다.[26] 이는 2014년 KBO 리그의 외국인 선수 확장 정책에 따른 영입이었다. MLB 통산 135홈런을 기록한 경력 덕분에 시즌 전부터 많은 기대를 모았다.2014년 시즌 초반에는 팀의 4번 타자로 활약했으나, 4월 22일 문학 야구장에서 열린 NC와의 경기 도중 에릭 테임즈와 충돌하여 손목 부상을 당했고, 이로 인해 1군 엔트리에서 제외되었다. 5월 중순에 복귀했지만, 5월 28일 목동 야구장에서 열린 넥센과의 경기에서 옆구리 통증을 느껴 다시 2군으로 내려갔다. 7월에 잠시 복귀했으나, 이번에는 발바닥 통증으로 또다시 전력에서 이탈했다.
잦은 부상과 경기 출전 문제로 인해 7월 15일, 당시 SK 와이번스 감독이었던 이만수와 자신의 몸 상태를 두고 언쟁을 벌였다. 이 과정에서 스캇은 이만수 감독에게 "겁쟁이"(coward|코워드eng), "거짓말쟁이"(liar|라이어eng), "괴물"(Monster|몬스터eng) 등 부적절하고 공격적인 발언을 하여 큰 논란을 일으켰다.[27] 결국 이 사건으로 인해 인성 문제가 불거졌고, 구단은 징계 차원에서 7월 16일 그를 웨이버 공시하여 방출했다.[27]
2014년 최종 성적은 부상으로 인해 33경기 출전에 그쳐 타율 .267, 6홈런, OPS .897을 기록했다. SK 와이번스는 그의 대체 선수로 앤드루 브라운을 영입했다.
2. 2. 6. 토론토 블루제이스 마이너 시절
2015년 3월 멕시칸 리그의 페리코스 데 푸에블라와 계약하여 28경기에 출전, 타율 .292, 7홈런을 기록했으나 5월 13일에 방출되었다. 이후 5월 15일, 토론토 블루제이스와 마이너 리그 계약을 맺고 트리플 A 팀인 버팔로 바이슨스로 배정되었다.[28][29] 버팔로 바이슨스 소속으로 52경기에 출전하여 타율 .240을 기록한 뒤, 같은 해 8월 13일에 방출되었다.[30][8]이 해를 마지막으로 프로 야구 팀에 소속되지 않았다.[36]
3. 논란
루크 스캇은 선수 생활 동안 여러 논란에 휩싸였다. KBO 리그 SK 와이번스 시절에는 당시 감독이었던 이만수와 공개적으로 충돌하며 팀에서 방출되는 사건이 있었으며, 미국에서는 버락 오바마 당시 대통령의 출생지에 대한 근거 없는 의혹을 제기하여 사회적 물의를 빚기도 했다.
3. 1. 이만수 감독과의 불화
2014년 외국인 선수 확장 정책에 따라 SK 와이번스에 영입되었다. MLB 통산 135홈런을 기록한 경력 덕분에 시즌 전부터 많은 기대를 모았다. 시즌 초 4번 타자로 기용되었으나, 4월 22일 NC 다이노스와의 경기에서 에릭 테임즈와 충돌하여 손목 부상을 입고 2군으로 내려갔다. 5월 중순 복귀했지만, 5월 28일 넥센 히어로즈와의 경기에서 옆구리 통증을 호소하며 다시 2군으로 이동했고, 7월에 복귀한 후에는 발바닥 통증으로 또다시 2군에 머물게 되었다.잦은 부상과 2군행이 반복되던 중, 7월 15일 자신의 몸 상태 문제와 관련하여 당시 감독이었던 이만수와 심한 언쟁을 벌였다. 이 과정에서 스캇은 이만수 감독을 향해 "겁쟁이"(cowardeng), "거짓말쟁이"(liareng)[27], "괴물"(Monstereng) 등 매우 공격적인 발언을 사용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 사건으로 스캇의 인성에 대한 논란이 크게 불거졌고, 결국 구단은 징계 차원에서 그를 퇴출하기로 결정했다.[27] 다음 날인 7월 16일, 스캇은 웨이버 공시되어 팀을 떠나게 되었다.[27] SK 와이번스는 그의 대체 선수로 앤드루 브라운을 영입했다.
3. 2. 버락 오바마 대통령 출생 음모론
스콧은 더 큰 개인적 책임과 작은 정부를 지지하는 보수적인 성향을 가지고 있다.[31]2010년, 버락 오바마 대통령의 출생 증명서를 둘러싼 논란 속에서 스콧은 오바마 대통령이 미국에서 태어나지 않았다고 주장하며 파문을 일으켰다. 그는 "나는 여기서 태어났다. 만약 누군가 나에게 여기서 태어나지 않았다고 한다면, 10분 안에 내 서류함에서 진짜 출생 증명서를 꺼내 보여줄 수 있다. 그런데 그(오바마)는 모든 것을 회피하고 질문에 답하지 않는다. 무언가를 숨기고 있기 때문"이라고 발언했다.[31][32] 같은 해 오프 시즌에도 스콧은 오바마 대통령이 미국에서 태어나지 않았다고 확신한다는 발언을 반복하여 물의를 빚었다.[33][34] 이에 당시 소속팀이었던 볼티모어 오리올스는 즉각 성명을 내고 "스캇의 발언은 구단과는 전혀 관계가 없으며, 개인의 독단적인 발언일 뿐"이라고 밝히며 논란과 거리를 두었다.[35]
4. 개인 생활
스캇은 사냥을 즐기며 총기 애호가로 알려져 있다. 그는 개인의 책임을 강조하고 작은 정부를 지지하는 보수적인 정치 성향을 가지고 있다.[31]
2010년, 버락 오바마 대통령 시민권 음모론이 확산되던 중, 스캇은 당시 대통령이었던 버락 오바마가 미국에서 태어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그는 자신이 쉽게 출생 증명서를 제시할 수 있음을 언급하며 "저는 여기서 태어났습니다. 만약 누군가 저에게 여기서 태어나지 않았다고 주장한다면, 저는 10분 안에 제 서류 캐비닛에 가서 진짜 출생 증명서를 꺼내 '보세요! 여기 있습니다. 여기 있어요.'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 사람은 모든 것을 회피했습니다. 그는 질문을 피하고, 어떤 것에도 대답하지 않습니다. 왜냐고요? 그는 무언가를 숨기고 있기 때문입니다."라고 덧붙였다.[31][32]
5. 통산 기록
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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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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